다리 밑으로 흐르는 축복 (목회 칼럼-151)
- 작성자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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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3-08 01:07




세상은 흔히 '풍성한 삶'을 더 많이 채우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참된 풍성함은 고인 물처럼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흐르는 역동적인 은혜에 있습니다.
지난 주일 아침, 우리 대학부 지체들과 Youth들은 Baylor @baylorpublichealth health 교수이신 권용경 집사님과 그의 학생들과 함께 학교앞 35QJS 도로 밑에 모이는 'Church Under the Bridge'에서 동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가운 다리 밑 노숙인들을 찾아가 준비된 물품을 나눠주고 노숙하며 더러워진 발을 씻겨주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사실 세족 사역은 쉬운 봉사가 아닙니다. 단순한 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발은 인간의 신체 부위 중 가장 낮고, 가장 쉽게 더러워지며, 감추고 싶은 부분입니다. 노숙하는 이들의 발은 생각 이상 일 것입니다. 대학부 청년들은 그 발을 거리낌없이 씻어주며 편견 없이 섬겨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 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부 지체들이 무릎을 꿇고 낯선 이의 찌든 발을 정성스레 닦아낼 때 이미 그곳에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이 임했음을 믿습니다. 청년들의 낮은 삶을 통해 내 자신이 부끄럽고 교만했음을 다시 한번 깨닫고 고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낮아짐의 풍성함'입니다.
Church under the bridge 사역은 Mission Waco에서 오래전부터 하던 사역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주일 아침에 다리 밑에 예배 좌석을 만들고 예배를 준비하고 식사를 나눔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의 섬김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어떠한 모습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웨이코의 섬김이 다리 밑에서 이루어졌다면, 다음 주에 있는 유은성 전도사 초청 국제기아대책기구와의 동역은 우리의 시야를 열방으로 넓혀줍니다. 기아대책의 슬로건처럼 우리는 빈곤과 재난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떡과 복음'을 함께 전해야 합니다.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떡'과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복음'은 분리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이번 '더 콜링 콘서트(The Calling Concert)'와 유은성 홍보대사의 찬양 간증 집회는 우리가 받을 복이 결코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손 위에 나의 손을 포개는 삶은, 전 세계 구석 구석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한숨을 닦아주는 사역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의 재정과 기도가 머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풍성함은 역설절입니다. 나눌수록 채워지는 복입니다.
우리가 왜 이토록 수고하며 섬겨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이자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 재능, 물질의 풍성함을 주신 이유는 그것을 통로 삼아 세상의 결핍을 채우라는 사명적 명령입니다.
어찌보면 다리밑 교회 사역과 국제기아대책기구의 사역은 본 교회의 소속된 청년들의 부모님들의 선교지 사역과도 연결됩니다.
부모들의 선교 사역을 어릴적부터 보고 함께 했던 청년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어 섬기는 것은, 청년들의 부모들의 선교지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일하심의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당신의 풍성함은 지금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함을 주시는 이유를 분명히 깨닫고, 세상의 복의 통로로 쓰임받는 주님의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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