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Netflix 2025)
- 작성자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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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2-24 17:32

사랑도 통역이 된다면 많은 이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이해하는데 어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사랑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드라마입니다
어릴 적 사고와 상처, 따돌림으로 마음에 가시로 가득한 여자 주인공 차무희(고윤정)과 순수한 사랑을 영원토록 간직하고 싶어하는 영어, 일어, 이탈리어등 언어에 유능한 통역사 주호진(김선호)의 드라마를 통해서 사랑이란 따뜻한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스토리를 제공합니다.
차무희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과거의 아픔으로 자신은 사랑받으면 절대로 안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사랑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그 사랑을 피하고 거부하며 밀어냅니다. 그의 반해 주호진은 자신의 이성과 판단으로는 익숙하지 않던 존재를 그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듣다가 통역이란 통로를 통해서 이해할수 없었던 말과 행동을 이해하면서 사랑을 이해하게 됩니다.
드라마의 대사를 통해서 사랑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공감주고 있습니다.
"말하고 싶어지면 해요. 그때는 제대로 통역해 줄게요."
“사람들은 다 각자의 언어로 말해요” "뾰족이든 삐죽이든 말해 봐요. 이번에는 잘 알아들을게요""구차하고 찌질해도 내 것도 사랑이에요."
본 교회의 대학생들의 추천으로 드라마를 보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 기독교적인 시선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역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죄인 된 우리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던 하늘의 언어를,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비주얼적인 희생의 언어로 번역해 주셨습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각자의 언어로 복음을 통역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성령의 임재가 곧 '언어의 장벽을 넘는 통역의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성령은 복음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두지 않으시고, 각 나라의 방언으로 번역하여 모든 사람이 자기 언어로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소통에 있어 가장 탁월한 통역가이십니다
설교자와 그리스도인들은 통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각 사람마다 말하고 사랑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사랑하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듣는 이들이 이해할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도 이해하지 않으니 믿기는 더 욱 어려울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젊은 이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특히 MZ 세대로 불려지는 이들의 문화와 행동양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 설교자들은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교회라는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언어와 사고방식으로만 접근할려고 합니다. 특히 설교자는 기존의 기독교 문화라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들이 복음을 듣고 응답하기보다는 복음이 거북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질수 밖에 없습니다.
'권위'보다는 '진정성'을 통역하십시오: 현대인은 일방적인 훈계나 권위주의적인 태도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식의 선포는 그들에게 '불통'으로 읽힙니다. 주호진 통역사가 차무희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듯이, 설교자도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나누고 삶으로 증명하는 '투명한 진정성'을 보여줄 때 그들은 비로소 복음의 언어에 귀를 엽니다.
'종교적 용어'를 '일상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 용어는 불신자이나 초신자들에게 외국어와 같습니다. 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와는 많은 괘리가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세속적인 유행어를 쓰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그들의 삶의 맥락(Context) 안에서 피부에 와닿는 언어로 재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주호진 통역사는 차무희의 거친 표현을 '사랑의 요청'으로 통역해 냈습니다. 우리 설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전통의 울타리를 넘어, MZ 세대의 문화와 고민이라는 필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이해시키고 전하기 위해서는 설교자는 통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김영봉 목사는 회중과 공감대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는 ‘공감적 듣기’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합니다.(설교자의 일주일 213P)
야고보서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성내기 보다 듣는 것을 먼저하라고 권면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야고보서 1:19)의 권면처럼, 그들의 문화를 먼저 '속히 듣고', 우리의 판단을 '더디 할 때', 비로소 복음은 그들의 심장에 꽂히는 생명의 언어로 통역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따뜻하고 감각 있게 전하는 '시대의 통역사'들이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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